이름:은영선 2012/7/16(월)

호박 파는 도인 할머니   저는 울진에 도착하면 단골 음식점 ‘옹심이 칼국수’에서 식사를 한다. 오늘도 할머니가 있다. 칼국수 집 옆 거처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몇 년 전 나에게 농산물을 사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젊은 여자(칼국수 집 손님)에게만 농산물을 강요했다. “내가 농사지은 호박이요. 동전 몇 개라도 좋으니 이걸 가져가시오.“ 할머니는 나와 젊은 여자의 거절에도 연신 당신의 물건을 사라고 했다.  애걸에 가까운 할머니 모습에 착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가 만원을 내밀며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내가 댁에게 물건 사라했소. 팔지도 않았는데 돈을 내미나. 이 돈 치우소.” 우렁찬 할머니 고함에 칼국수집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비가 오는데, 저는 할머니께서 호박 파시는 게 안쓰러워서요. 그래서 제가 사려고요.”마음 착한 남자는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나는 댁에게 사라 안했소. 내가 왜 안쓰러, 내가 돈 달라했소, 동전 달라했지.” 할머니 고함에 남자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나는 댁에게 안 팔아. 이 젊은 여자와 저 아주머이에게 주겠단 말이야. 댁에게 주려고 내가 힘들여 농사지은 줄 알아.”노기를 연발하는 할머니 태도에도 남자는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할머니 왜 저를 미워하세요. 저는 할머니가 어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물건 파시는 걸 보면 무조건 사고 싶어요.”남자의 애걸에도 할머니는 박복함을 연발하며 거절했다. 할머니 말에 사람들은 나와 젊은 여자에게 외가와 친가의 할머니 근황을 확인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외할머니, 고등학교 때 할머니를 여의었고, 젊은 여자는 대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저 분들도 나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젊은 남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나와 젊은 여자에게 ‘댁들은 할머니 얼굴을 기억 하냐’고 물었다. 우리는 ‘외가와 친가 할머니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두 분 할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할머니 얼굴도 기억 못하는 박복한 댁에게 내가 어떻게 파나. 내가 이런 말은 안하려했는데 자꾸 우겨대니, 댁이 박복한 걸 인정해야 그 상황에서 벗어난다.” 할머니의 강타에 남자는 자신의 근황을 쏟아내며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하며 나와 젊은 여자를 찾았다. 급기야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치매가 걸린 분으로 몰아댔다.  동네사람들 입장에선 울진을 찾은 관광객들을 달래야했기 때문이다. “내가 댁에게 물건 판다했나. 박복한 댁이랑 말하니까 내가 치매 노인이 되지 않나. 억울하다”할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나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그때 할머니의 억울함을 달래주지 않았다. 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할머니에게 동전 500원을 드렸다. 할머니는 의아해 하며 동전 이유를 물었다. 나는 예전에 할머니가 나에게 물건을 강요했던 것을 설명했다.“할머니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정성으로 가꾼 보약을 주고 싶은 거잖아요. 그때 할머니 호박을 먹었다면 제가 덜 아팠을 텐데요. 저 많이 아팠어요. 할머니가 도사인데 저는 그걸 몰랐어요. 죄송해요.” 나는 진심으로 사과했다.“어떻게 내 마음을 꼭 아나. 왜 이제야 그걸 아나. 내가 92살인데 너무 늙어 댁을 보살펴 줄 수도  없고, 마이 아팠나”오랜 세월 친구처럼 할머니가 말했다.“지금도 아파요. 할머니 어떻게 하면 제 병이 나을 까요.”당신의 몸도 버거 울 92살 할머니에게 나는 죄스러운 질문을 던졌다.“내 집에서 살아라. 돈은 생각 말고, 거저는 안 되고 동전이라도 던져놓고 짐 싸서 내 집으로 와라.”할머니가 걱정하며 말했다.“저도 그러고 싶은데 집이 서울이고 엄마도 아파요. 저의 어머니는 건강해질까요?” 92살의 할머니에게 내 엄마 건강까지 챙기게 했다. 나의 질문에 할머니는 내 엄마의 나이를 물었고 덕담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총기가 넘쳤고 나를 꽤 뚫었다. 그리고 당신의 궁금증을 나에게 털어 놓았다. 아들이 집을 지었고, 그 집에서 당신은 살 수 없고, 앞으로 집의 미래가 어떤지 등 등 등...내가 명당을 찾으며 수많은 도인들을 만나 터득했던 풍수를 할머니는 단박에 쏟아냈다.  아, 이 할머니와 며칠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당신이 손수 담근 된장을 한가득 퍼 주면서도 나의 까다로움을 걱정했다. “먹어보고 괜찮은지 봐라. 아무거나 먹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거나 잘 먹지도 못하는 사람 아닌가.” 부모님이 끓여준 음식에도 탈나는 나의 몸 상태를 할머니는 꿰고 있었다.“할머니, 그런 신통력을 숨기고 사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20년 넘게 울진을 왔는데 지금에서야 할머니를 알아보고 정말 죄송해요.”내가 할머니를 안으며 한탄했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댁이 뭔데 내 고통을 아나. 뭐하는 사람이나. 왜 이제야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나.”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를 위해서 오래 사시라는 내 말에 할머니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숙박지로 돌아와서 주변인들에게 92살 할머니가 주신 된장을 자랑했다.“그 연세에 악착같이 농사지어 장이 열릴 때면 팔러나가는 돈에 악착을 부리는 분인데 믿기지 않네.“   사람들은 놀라며 믿으려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가 주신 된장을 확인시켰고 그제 서야 사람들은 내 말을 믿었다.“치매기가 있어 그럴 거예요.”주변인들이 중얼거렸다.나는 답답했다. 어떻게 할머니를 설명해야 믿어줄까.,..할머니는 당신의 혜안이 자손에게 해가 될까 숨기고 지냈다. 그리고 자신의 혜안을 없애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혜안을 쏟아 부은 농산물을 당신이 주고 싶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는 몸이 약한 여자들을 골라가며 당신의 정성을 나누어 준거였다. “자식 있소, 없으면 이것 가져가 먹으시오. 자식은 못 보아도 몸은 좀 나아질 거요. 돈은 동전 몇 게만 주면 되오.“   첫 만남에서 할머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보약은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여야 효력이 있다는 옛말을 할머니는 간파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지식에도 즐거워하는 요즘 할머니는 당신의 능력을 노동으로 베풀며 온 몸으로 헌신을 실천했다. 92살 할머니의 혜안을 깨달았다고 천방지축인 내가 지식을 갖출 리 없지만 어리석음은 털어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할머니, 당신은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다음에 찾을 때는 제가 막걸리를 대접하며 할머니의 우주관을 듣고 싶습니다.